'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이라는 꽃말을 가진 '메리골드' + 감정이나 의지, 생각 따위를 느끼거나 일으키는 '마음' + 얼룩을 없애주고 구겨진 곳을 다려주며 수선까지 해주는 '세탁소'라는 단어의 조합인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 이런 곳이 눈에 띈다면 저도 모르게 발걸음이 향할 것 같아요. 누구나 마음 한곳에 상처 하나씩은 자리 잡고 있잖아요. 시간이 지날수록 상처가 옅어지는 경우도 많지만 어떤 상처는 마음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붙박이처럼 꼼짝하지 않아요. 그럴 때 이런 힘든 기억은 내 기억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하죠. 힘든 마음을 안고 기대 반 의심 반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의 문을 두드리면,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의 구김과 얼룩이 사라져 행복이라는 것이 올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살며 사랑하며 이야기의 힘을 믿고 오늘도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윤정은 저자의 이 책은 잡화점, 백화점, 편의점, 서점을 잇는 힐링 소설이에요. 어떤 장소에서 사람들이 힐링하는 이야기, 비슷한 포맷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지치고 힘든 마음이 쉴 수 있는 곳, 위로받을 장소가 현실 세계에선 딱히 없기에 소설 속에서라도 그런 장소를 마련해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만약에 말이야. 후회되는 일을 되돌릴 수 있다면, 마음에 상처로 새겨져 굳어버린 얼룩 같은 아픔을 지울 수 있다면, 당신은 행복해질까? 정말 그 하나만 지우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봄이 지나면 가을이 오고, 가을이 지나면 다시 봄이 오는 마을이 있어요. 이곳에는 언제나 꽃 같은 날들이 이어져요. 눈빛과 마음이 선한 이들이 모여 살기에, 그들은 미움, 아픔, 슬픔이라는 감정을 몰라요. 늘 평화로운 이 마을에 한 여자가 찾아오게 됩니다. 한 남자는 여자를 보고 첫눈에 반하고, 이들은 마을에서 예쁜 딸까지 낳고 평온하게 살아요. 자신에게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고 자라난 딸은 어느 날 엄마, 아빠의 이야기를 엿듣고는 본인에게 대단한 능력 두 가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요. 혼란스러운 마음에 뒷말을 마저 듣지 못하고 자신의 방으로 온 소녀는 잠이 드는데... 잠에서 깨어난 소녀는 엄마, 아빠, 사랑하는 모든 것이 사라진 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오로지 엄마, 아빠를 다시 만나기 위해 자기 능력을 사용하며 백만 번을 다시 태어난 소녀. 이번에 그녀가 머무는 동네는 엄마가 좋아하던 꽃 이름과 같은 '메리골드'에요. 모두가 잠든 밤, 커다란 꽃이 피어나듯 동네에서 가장 높은 언덕에 마음 세탁소가 생겨나요.
"마음의 얼룩을 지우고, 아픈 기억을 지워드려요. 당신이 행복해질 수 있다면 구겨진 마음의 주름을 다려줄 수도, 얼룩을 빼줄 수도 있어요. 모든 얼룩 지워드립니다. 오세요, 마음 세탁소로."
창백하게 하얀 얼굴, 젓가락처럼 마른 몸, 까맣고 구불구불한 긴 머리의 미스테리한 여자 지은. 지은은 마음 세탁소를 찾는 이들을 위해 매일 정성스럽게 따뜻한 차를 끓여요. 차를 마신 이들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자신만의 힘겨움을 그녀에게 털어놓아요. 대학 시절 신인 영화상을 받았지만 그 이후 어떤 작품도 만들지 못하는 재하, 사랑하는 사람의 배신에 괴로워하는 연희, 인스타 인플루언서이지만 외로움과 괴로움을 느끼는 은별, 재하와 연희의 친구인 말수가 적은 해인, 아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한 재하 엄마 연자 씨, 왕따와 비교로 상처와 방황을 한 택배 기사 영희 삼촌... 많은 이들이 각자의 사연으로 마음 세탁소를 찾아요. 이들과 속 깊은 대화를 통해 지은의 내면에도 변화가 찾아와요.
지은과 마음 세탁소를 찾은 사람들은 마음의 얼룩을 지우고, 아픈 기억을 지우고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어떤 아픈 기억은 지워져야만 살 수 있기도 하고, 어떤 기억은 아프지만 그 불행을 이겨내는 힘으로 살기도 하지. 슬픔이 때론 살아가는 힘이 되기도 해." (P. 53)
"마음의 얼룩도 그래. 자기 얼룩을 인정한 순간, 더 이상 얼룩이 얼룩이 아니라 마음의 나이테가 되듯이 말이야. 그냥 오늘을 살면 돼. 오늘 하루 잘 살고, 또 오늘을 살고, 내일이 오면 또 오늘을 사는 거야. 그러면 돼." (P. 70)
"비밀은 바로, 오늘 지금 이 순간이야. 행복은 내면의 빛이다. 손에 닿을 수 없는 높은 하늘이 아니라 마음의 하늘에서 빛나고 있다. 행복은 이미 우리 마음 안에 있다. 행복은 바로 지금 여기, 이곳에 있다." (P. 225)
소설 속 다양한 인물들의 사연을 들으며 공감하고, 눈물을 훔치기도 하고 제 나름대로 위로도 전했어요. 과거에 사로잡혀 백만 번이나 태어난 지은의 이야기에는 그 슬픔과 공허함에 한기가 느껴지기도 했고요. 마음을 주지 않으려 애쓰며 살았지만, 지은은 메리골드 동네에서 안아주고 보듬어 주는 가족 같은 존재들을 알게 돼요. 그녀는 자기 능력 두 가지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조금씩 알아차리면서 현재를 즐기며 살아가기로 다짐하죠.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어요. 그런데 현재를 오롯이 즐기며 사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지은처럼 과거에 얽매여 표정을 잃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요? 지금, 이 순간은 다시 오지 못할 소중한 시간인데 자주 잊어버려요. 그럴 때 이런 책을 한 권 읽으면서 다시 깨닫는 거죠. 아! 지금, 이 순간을 살아야지! 하면서요. 우리 모두 자신의 마음속에 세탁소를 하나 차리면 어떨까요? 상처마다 다림질할 것, 이 상태로도 괜찮으니 그냥 놔둘 것, 표백제까지 써서라도 새하얗게 만들 것 등을 구분해보는 거예요. 그런 생각만으로도 조금은 힐링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마음 세탁소에 들러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은 분께 추천해 드려요. 감사합니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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