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하게 우려낸 곰국을 먹을 때처럼 헛헛한 속을 따뜻하게 덥혀주는 이야기다.
역시 문학동네 문학상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친구라면 가족 여행도 마다할 만큼 좋아 어쩔 줄 모르는, 중학생 딸과 딸의 친구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다현이는 친구가 엄마만큼 중요하다. 초등학교 때 은따를 겪었던 다현이는 중학생이 되어 만난 다섯손가락 친구들이 없는 인생은 상상도 할 수 없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고 보통 아이들이 거의 하지 않는 블로그를 하지만 친구들이 자기를 진지충이라 여길까 봐 체리 새우 블로그도 비공개로 설정해 두었다.
친구들이 싫어하는 노은유란 아이와 짝이 되고 프로젝트형 국어 모둠 과제를 위해 은유 집에 모여야 하는 상황이 되자 다현이는 친구들의 눈치를 본다. 친구들이 싫어하는 은유에게서 많은 장점들을 발견하고 은유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 하지만 친구들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없다.
다섯손가락 친구들에게 자신은 그저 셔틀이었으며 진정한 친구가 아니었음을 알게 된 다현이는 상처를 받는다. 어떠한 말과 모습에도 비난하지 않고 온전히 자신을 받아주고 이해하는 모둠친구들에게 위안을 얻으며 친구는 동등한 관계여야 함을 깨닫는다.
주인공 다현이가 독립된 존재로서 온전한 관계를 맺기 위한 방법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촘촘하고 사려 깊게 풀어가는 감동적인 글이다.
“어차피 우리 모두는 나무들처럼 혼자야. 좋은 친구라면 서로에게 햇살이 되어 주고 바람이 되어 주면 돼. 독립된 나무로 잘 자라게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 그러다 보면 과제할 때 너희처럼 좋은 친구도 만나고, 봉사활동이나 마을 밥집 가면 거기서 또 멋진 친구들을 만나.”
노은유의 말이다. 은유도 은따 경험이 있는 아이다. 언젠가 딸이 친구라는 시를 한 편 썼는데, 자기는 햇살과 물 같은 친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어쩌면 딸도 은따 경험이 있는 건 아닌 가 가슴이 철렁했다. 아마 잊을 만하면 매스컴에 학교폭력 관련 기사가 뜨기 때문일 것이다. 이 땅의 모든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가 따를 당하면 어쩌나 노심초사한다. 따는 누구나 당할 수 있다.
<누구 한 명이 ‘그 애 좀 이상하지 않아?’ 이렇게 씨앗을 뿌리면, 다른 친구들은 ‘이상하지, 완전 이상해.’라면 싹을 틔운다. 그다음부터 나무는 알아서 자란다. ‘좀 이상한 그 애’로 찍혔던 아니는 나중에 어마어마한 이미지의 괴물이 되어 있는 것이다.>(52쪽)
이 책은 따를 당했을 때 그걸 벗어나는 방법을 말하지 않는다. 아이가 그 상황을 직시하고 자기와 관계에 대해 올바르게 판단하고 나를 존중하라고 이야기한다.
<친구는 동등한 관계여야 한다. 그런데 나는 자주 무시당했다. 지금 생각하니 내가 자초한 듯, 나는 친구를 잃을까 봐 늘 전전긍긍이었다. 선물 주는 버릇, 눈치 보기, 거절 못하는 것, 스스로를 업신여기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존중하기 어렵다. 당당해지자!>(170쪽)
다현이가 온전한 관계에 눈을 뜨고 자신을 성찰하는 모습이 안타깝도록 마음에 다가왔다. 딸에게 들려주고 싶다. 이 땅의 모든 청소년들에게, 아니 관계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체리새우는 맑은 물에 사는 담수 새우고 몸집이 자라면 주기적으로 탈피를 한다. 빈 껍질을 벗어버리고 점프하는 모습이 무척 신비롭다.>(172쪽)
주인공 다현이가 좋아하는 체리새우는 곧 다현이의 새로운 모습이다. 상처로 인해 아프겠지만 상처를 견디고 나면 조만간 새롭고 단단한 껍질이 생길 거라고 자신을 추스르는 다현이는 결국 더 단단해진다. 더 성숙하고 단단해진 다현이가 마지막에 자신을 아프게 한 아람이를 배려하는 모습은 참 의미심장하다.
OECD국가에서 청소년 자살률 1위인 우리 나라에서 청소년들의 정신건강이 좋을 리 없다는 것은 뻔하다. 마음이 황폐한 아이들이 온전하고 건강한 관계를 맺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입시 위주, 경쟁 위주의 사회 시스템을 고치는 것이 우선이겠지만 아직 멀기만 하다. 비록 그런 환경일지라도 내 마음의 곳간이 풍요롭고 단단해진다면 다른 사람을 배려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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